록키의 항해 — 프로젝트 헤일메리 그 이후
EP.03 — 타우세티 도착
Arrival at Tau Ceti
"설계 마진이 맞았다."
— 록키, 타우세티 궤도에서
SCENE 01
89년
89년은 긴 시간이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한 사람의 전체 생애보다 길다. 하지만 에리디안의 기준으로는 — 정확히는 모른다. 에리디안의 수명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는 없다. 그레이스도 끝내 알아내지 못한 것 중 하나다. 록키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에리디안들 자신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나이'는 외골격의 경화 정도로 측정되는 상대적 개념이지, 절대적 시간 단위가 아니다.
확실한 것은 록키가 늙었다는 것이다.
89년의 항해 동안, 록키의 외골격은 눈에 띄게 — 아니, 에리디안이므로 '진동으로 감지할 수 있게' — 변했다. 제노나이트 외골격의 관절부가 딱딱해졌다. 움직일 때 예전에는 없던 마찰음이 났다. 다섯 다리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코키, 닉키, 틱키는 건강했다. 그들은 록키보다 젊었고, 89년이 지나도 아직 활동기에 있었다. 특히 틱키는 89년 동안 헤일록키호의 모든 시스템을 두 번 이상 분해하고 재조립했다. 엔지니어의 본능이다. 할 일이 없으면 있는 것을 뜯어본다.
89년 동안 네 명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했다. 항성 부정맥 이론 모델을 수십 번 개선했다. 아스트로파지의 에너지 역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연구했다. 타우세티 항성계의 행성 구성을 원격 관측 데이터로 분석했다.
그리고 록키는 89년 동안 매일, 1기압 구역을 점검했다.
틱키
♩♫♪♩♫
"록키. 오늘도 1기압 구역 점검하나. 질문."
록키
♫♩♫
"그렇다."
틱키
♪♩♫♪
"89년 동안 매일 점검했다. 한 번도 고장 안 났다. 왜 계속 하나. 질문."
록키
♫♩♪♫
"고장 안 나는 이유가 매일 점검하기 때문이다."
틱키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엔지니어끼리는 그 논리를 이해한다.
· · ·

SCENE 02
예상 밖의 신호
타우세티 항성계 외곽에서 감속이 시작되었을 때, 코키가 이상을 발견했다.
코키
♪♫♩♪♫♩
"록키. 타우세티 e 궤도에서 인공 신호 감지. 반복 패턴. 자연 현상 아니다."
록키의 외골격이 미세하게 경직되었다. 89년을 달려온 이유가 눈앞에 있었다. 아니, '귀앞에' 있었다.
록키
♫♩♪♫
"신호 특성 분석. 에리디안 기술인가. 질문."
코키
♪♫♩♪
"아니다. 에리디안 통신 주파수 대역 아니다. 전파 기반이다."
전파. 록키는 알고 있었다. 전파를 쓰는 문명. 에리디안은 음파 문명이고, 전파는 그레이스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록키
♫♩♪♫♩♪♫♩
"전파 기반 통신. 주파수 대역 분석하라. 헤일메리호 통신 프로토콜과 비교하라."
코키가 분석을 돌렸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3분. 그 3분이 89년보다 길었다.
코키
♪♫♩♪♫♩♪♫
"일치율 94%. 헤일메리호 통신 프로토콜의 변형판이다. 록키. 이것은—"
록키
♫ ♩ ♫
"인간이다."
아스트로파지 위기를 해결한 후, 지구의 천문학자들은 다른 항성계의 후유증을 관측했을 것이다. 지구에서 타우세티까지는 11.9 광년. 에리드에서 타우세티까지는 10.7 광년으로 더 가깝지만, 지구가 록키보다 수십 년 먼저 출발했다면 먼저 도착할 수 있다.
또한 지구의 추진 기술은 헤일메리호 이후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스트로파지 추진의 효율을 높이거나, 새로운 가속 방법을 개발했다면 여행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 · ·

SCENE 03
격벽 너머
지구 우주선의 이름은 '세컨드 찬스(Second Chance)'였다.
헤일메리호보다 컸다. 훨씬 컸다. 헤일메리호가 절박한 편도 미션의 산물이었다면, 세컨드 찬스는 준비된 탐사선이었다. 승무원 6명이 깨어 있는 상태로 탑승하고 있었고 — 인공동면 없이 — 선내에 자체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었다. 식물 재배 구역, 단백질 합성 시설, 심지어 작은 도서관까지.
세컨드 찬스의 선장은 신현서였다. 한국인. 천체물리학자 겸 우주비행사. 신현서는 록키의 전파 신호를 수신하고 3시간 만에 응답을 보내왔다.
신 선장 (전파)
"에리디안 선박에 고합니다. 여기는 지구 탐사선 세컨드 찬스. 신현서 선장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신호를 수신했습니다. 우리는 라일랜드 그레이스와 에리디안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도킹을 제안합니다."
록키는 이 메시지를 듣고 — 그레이스가 만든 프로토콜이 영어를 에리디안 음파로 변환해주었다 — 한동안 멈춰 있었다.
"우리는 라일랜드 그레이스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안다. 그레이스를 안다. 지구가 기억하고 있다.
도킹은 6시간이 걸렸다. 두 우주선의 기술 규격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틱키가 해냈다. 틱키는 세컨드 찬스의 외벽 구조를 진동 분석으로 파악하고, 호환 가능한 에어록 어댑터를 4시간 만에 설계하고 2시간 만에 제작했다.
록키
♫♩♪♫
"틱키. 잘했다 잘했다 잘했다."
틱키
♩♫♪
"록키에게 배웠다."
에어록이 연결되었다. 하지만 물론 에리디안과 인간이 같은 공간에 있을 수는 없다. 29기압 대 1기압. 210도 대 22도. 암모니아 대기 대 산소-질소 대기. 원작의 헤일메리호에서처럼, 격벽이 필요했다.
세컨드 찬스의 승무원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구는 헤일메리호의 데이터로부터 에리디안 환경 요구 사항을 알고 있었고, 세컨드 찬스에는 이미 에리디안 접촉용 격벽 인터페이스가 설계되어 있었다.
록키가 격벽 앞에 섰다. 격벽 너머에 인간이 있었다. 40년 전 마지막으로 인간을 — 그레이스를 — 이 거리에서 느낀 이후 처음이었다.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격벽을 통해 전달되는 미세 진동.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심장. 다른 리듬. 다른 체온. 하지만 같은 종. 그레이스와 같은 종.
신 선장
"록키... 맞습니까?"
록키는 그 음파를 들었다. 영어. 그레이스의 언어. 89년 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 발음이 달랐다. 그레이스의 영어와 미묘하게 달랐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40년간 매일 영어를 들은 덕분이다.
록키
♫♩♪♫♩
"맞다. 나는 록키다. 반갑다."
격벽 너머에서 이상한 음파가 났다. 여러 인간이 동시에 내는 음파. 높은 주파수, 불규칙한 패턴, 하지만 적대적이지 않은 진동. 록키는 이것을 알았다. 40년간 매일 들어본 것이었으니까.
웃음. 그리고 울음. 동시에.
세컨드 찬스에는 그레이스가 보낸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된 에리디안 소통 인터페이스가 탑재되어 있었다. 에리디안 음파를 영어로 실시간 번역하는 AI 시스템. 정확도는 약 80%로, 기본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미묘한 뉘앙스는 놓칠 수 있다. 록키 자신이 직접 영어를 말하는 것이 여전히 더 정확하다 — 다만 에리디안 음성 기관으로 영어 발음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그레이스가 만든 '음계-영어 번역 패턴'을 사용한다.
· · ·

SCENE 04
부고
신 선장이 물었다. 당연히 물어야 할 질문을.
신 선장
"그레이스 박사는...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격벽 너머의 심장 박동들이 동시에 빨라졌다. 기대의 진동. 록키는 그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기대를 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록키
♩ ... ♩ ... ♩
"그레이스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
심장 박동들이 변했다. 어떤 것은 빨라지고, 어떤 것은 느려졌다. 호흡 패턴이 불규칙해졌다. 인간이 충격을 받을 때 나타나는 생리적 반응. 록키는 40년 동안 한 명의 인간을 관찰했지만, 그 데이터로 여러 명의 반응을 읽을 수 있었다. 기본 패턴은 같으니까.
긴 침묵.
신 선장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록키
♫♩♪♫♩
"노환. 인간의 몸이 멈추는 자연 과정이라고 그레이스가 설명했다. 고통은 없었다. 잠든 것처럼 멈추었다."
신 선장
"그는... 행복했습니까?"
록키
♫ ♩ ♫
"그렇다. 그레이스는 행복했다. 나는 안다."
신 선장
"어떻게 아십니까?"
록키
♫♩♪♫♩♪♫
"40년 동안 매일 그레이스의 심장 박동을 들었다. 행복할 때의 패턴을 안다. 그레이스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행복했다. 문제를 풀 때 행복했다. 나와 이야기할 때 행복했다. 그레이스의 마지막 날에도 심장 패턴은 평온했다. 나는 안다."
격벽 너머에서 또 그 음파가 났다. 웃음과 울음이 섞인 것. 인간은 이상한 종족이다. 상반되는 감정을 동시에 표현한다. 에리디안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록키는 40년간의 경험으로 이것이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것은 — 그레이스가 가르쳐 준 단어로 — '감동'이다.
록키가 그레이스의 노트북과 40년치 연구 데이터를 1기압 구역 에어록을 통해 전달했다. 그레이스가 남긴 모든 것. 에리디안 생물학 연구, 아스트로파지 관찰 기록, 에리디안-영어 사전 최종판, 에리디안 아이들의 학습 기록, 그리고 — 개인 일기.
신 선장
"이건... 인류의 보물입니다. 감사합니다, 록키."
록키
♫♩♪♫
"보물 아니다. 그레이스의 것이다. 그레이스의 것은 그레이스의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
신 선장이 말했다.
신 선장
"지구에서 그레이스 박사는 영웅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록키
♫♩♫♩♫♩
"영웅 아니다. 과학자. 선생님. 친구. 이것이 더 좋은 단어다."
그레이스가 들었다면 또 그 이상한 음파를 냈을 것이다. 웃음. 그리고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록키, 그건 똑같은 말이야."
아마 맞을 것이다. 그레이스는 보통 맞으니까.
· · ·

SCENE 05
세 번째 신호
신 선장과 록키가 항성 부정맥 데이터를 공유하고 공동 분석을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코키가 다시 이상을 감지했다.
코키
♪♫♩♪♫♩♪♫♩
"록키. 타우세티 e 행성 표면에서 에너지 방출 감지. 규칙적 패턴. 인공이다. 하지만 — 인간 기술도 아니고, 에리디안 기술도 아니다."
록키와 신 선장이 동시에 반응했다.
신 선장
"우리 센서도 같은 것을 잡았습니다. 에너지 스펙트럼이... 록키, 이건 아스트로파지와 비슷하지만 역방향입니다. 에너지를 흡수하는 게 아니라 방출하고 있어요."
록키
♫♩♪♫♩♪♫♩♪♫
"역방향 아스트로파지. 에너지 방출. 그것을 만든 존재가 있다는 뜻이다."
에너지 방출 패턴을 분석했다. 소수 수열이 포함되어 있었다. 2, 3, 5, 7, 11, 13... 자연은 소수 패턴을 만들지 않는다. 지적 존재만이 만든다.
타우세티 e에 누군가가 있다.
인간이 아니다. 에리디안이 아니다.
제3의 존재.
록키
♫ ♩ ♫ ♩ ♫
"...문제 있어. 아니. 문제 아닐 수도 있어. 아직 모른다."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대박."
⟡
NEXT EPISODE
EP.04 — 빛으로 말하는 자들
인간은 소리로 말한다. 에리디안은 진동으로 말한다.
타우세티 e의 존재는 빛으로 말한다.
세 종족이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 수학이다.
1, 2, 3부터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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